About Raver(Gim)

역사

김의 명칭

김은 우리 나라 전통영양식품으로서 오래 전부터 고급식품으로 우리의 식탁을 즐겁게 해왔다. 그 이름이 해의(海衣), 감태(甘苔), 해태(海苔), 청태(靑苔)이라고도 하며 주로 남해안 도시지방에서는 '해의' 라는 명칭을 사투리로 '해우' 하고 불러왔다.

김의 유래

그 이름을 찾아보면 해의(海衣), 해태(海苔), 감태(甘苔), 청태(靑苔), 감곽(甘藿), 그리고 " 김(金) "이 있다. 구전에 의하면 옛날에 김서방이 배가 고파 이끼같은 것을 건져내어 말려서 먹어보고 구워도 먹어보니 그 맛이 일품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먹게 했다고 해서 ' 김(金) '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속설이 있다.

김이 어떻게 한국인 식탁에 올라 왔을까?
  • 신라시대 – 김에 관한 문헌 최초 기록인 삼국유사(三國遺事)에 의하면 복쌈이라 하여 김을 밥에 싸서 먹었다는 기록이 전합니다.
  • 1425년대 - 양식을 시작한 조선시대 중기 지방 토산품 중에 '해의(海衣)' 가 들어 있었습니다.
    1. 경상도 지리지(慶尙道地理志): 280년전에 섬진강 어구에서 조개를 채취하던 한 할머니가 '물김'을 먹어보고 맛이 괜찮아 집으로 가져와서 마른 후 먹어보았더니 의외로 맛이 좋아 그 후에 대나무를 물 속에 박아 세운 후 엮어서 인공으로 김을 착생 시킨 것이 김 양식의 효시가 되었다는 하동지역 김 양식 전래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.
  • 1530년대 - 신증동국여지승람: 광양현(光阳县) 태인도(太仁島)에서 올라오는 토산품 중에 '김'을 채취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.
  • 1620년대 - 대나무와 참나무 가지를 간석지에 세워 김이 가지마다 달라붙어 자라게 함으로써 더 발전된 양상을 보였습니다.
  • 1640년대 – 인조18년,김의 어원이 본격적으로 생긴 것은 이때이라고 합니다. 전남영암 출신의 김여익이 광양 태인도에서 처음 양식하여 보급, 광양의 특산물로 인기가 있었고, 왕에게 진상 된 김을 부를만한 이름이 없어 왕인 인조가 김여익(金汝翼)의 성을 따서 김이라 부르라 하여 김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.
  • 1740년대 – 성호사설(星湖僿說)에 따르면 “속명 김[海衣]이란 것이 있는데, 이는 바로 바다돌[石] 위에 돋는 이끼[苔]로 빛깔은 붉다. 그것을 따서 마치 종이처럼 조각으로 만드니, 이것이 조(組)라는 것인 듯하다” 라는 내용이 있는데, 김을 종이 형태로 만들어 유통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.
  • 1800년대 - 대나무를 발로 엮어 한쪽을 기둥으로 물 속에 잘 박아 대나무발 한쪽이 물에 뜨는 발 양식이 시작되었습니다.
  • 1920년대 - 발에 또 발을 길게 엮어 기둥으로 양쪽을 잘 고정하여 세우고 발 자체가 파도에 밀려 얽히지 않도록 기술적으로 간격을 유지하였으며, 일정시간 동안 햇빛을 받거나, 비나 눈을 맞게 하여 더욱 맛과 향이 뛰어난 오늘날의 것과 비슷한 발 형태의 양식이 개발되었습니다. 이러한 양식이 발전되어 오늘날의 지주식 양식이 된 것입니다.
대한민국 수산식품 명인 선정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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